담양. 죽향이다. 충절, 혹은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대나무가  이곳에선 [살아 있는 금]이었다. 가가호호 대숲으로 세공품을 팔아 부를 이뤘으나  지금은 수입품에 밀려 이름만 남아 있다. 하여 다음 주말 이곳에서는 부활하는 대숲을 희구하는 죽향축제가 열린다.

   허나 하룻밤 묵고 갈 여행객에게는 그 사연이 뵐 턱 없다. 그저  대숲은 낯선 이상세계일 따름. 오죽하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류의 CF까지 나왔겠는가. [충절], [죽림칠현]에서 [전설의 고향]까지,대나무에 얽힌 단어 뜻은 대개 그런 종류다. 살짝 문이 열려 있는 담양대숲을 거닐며 삼림욕 아닌 죽림욕으로 심신을 씻는다.

   가사문학의 산실이라 했다. 식영정, 소쇄원, 송강정, 면앙정 등  화순으로가는  887번 지방도로가에 서 있는 가사문학 터전들은  어김없이 대숲으로 둘러싸였다. 새순이 돋은 대나무, 바람과 햇살이 끼여들면 그 잔잔한  소리와 연록색 빛의 무리가 참으로 근사하다. 금성면 대나무골 야영장은  일반에게 공개된 대표적인 대숲이다. 사진작가 신복진(59)씨가  20년간 가꾼 숲이다. 하늘은 다람쥐 꼬리만큼만 보이고 푹신푹신한 땅에는 산보하기 좋도록 오솔길이 나 있다. {대나무는 색, 향, 형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이상적인식물}이라 한다. 논두렁 들꽃들도  만개했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하늘을 뒤덮은 담양-순천간 도로 드라이브도 좋다.

   대개 여행은 화창한 날이 어울리는 법. 하지만 우중 소쇄원  정자에 앉아보면 어떨까. 빗줄기와 대숲, 그리고 당신이 함께 연주를 한다. 눈으로 하는 관광에 머리로 하는 문화답사를, 여기에 가슴으로 맞는 자연을 덧보탠다. 남도 땅, 특히 담양은 그러할 때 여행 맛을 더한다.

그 옛날 이곳 주막에 살던 갈애라는 처녀가  하도이뻐 암행어사까지 마음을뺐겼다고 한다. 하여 나라가 보낸 칼잡이가  갈애와 동침하던 어사를 베고갈애 얼굴을 치자 갈애는  사라져 버렸고,미인바위에 한쪽 눈이 찢어진 미소가 솟았다 한다.

   하지만  갈애바위가 이끄는 곳은 가사문학의 산실이라 부르기에는 창피한 면이 있다. 소쇄원 굵은 대나무는 [자랑스런]  관광객들 낙서로 칼집 투성이.

   비좁은 도로는 불법주차 차량과 낚시꾼들이 바글바글.  [문화재보호구역]에서 1m만 벗어나면 러브호텔과 카페가 득실득실….

   먼길  떠난 기분 잡치지 않으려면 소쇄원 앞 반석마을 찻집 [명가은]을 반드시 들를 일이다. 가사문학, 한가롭고 소소한 분위기는이 외딴 찻집에 숨어 있다. 마당 깊은 시골집을 개조한 명가은에서
녹차향을 음미한다. 널찍하고 잘 꾸민 실내도 좋거니와 민속음악, 명상음악 속에 여주인 김정자씨가 내는 차가 일품이다.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창밖 마당을 본다. 매발톱, 패랭이, 기타 갖은 들꽃이 활짝 피었다. 차 값은 주인에게 내는 게 아니라 손님이  알아서 문 옆에 놓고 간다. 옆에 놓인 거스름돈도 알아서 가져가면  된다.